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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디 늙은 카메라의 마지막 필름 한 롤 /w Fujica 35-SE
뷰파인더가 만들어 보여주는 상, 렌즈의 초점을 조절하면 따라 움직이는 뷰파인더 내 이중상, 왼손으로 조작하는 조리개 링의 탁탁 끊어지는 맛,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젖히는 필름 감기 레버의 장력, 필름실 뚜껑 틈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필름 특유의 그 냄새, 그리고 셔터가 닫히고 열리는 기계적 움직임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소리까지. 폰카가 흉내 내지 못하는 그 경험이야말로 '겉멋'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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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만 준비하시고, 쏘세요. /w Zeiss Ikon Contessa LKE
노출계가 없다고 해서 사진을 못 찍는 건 아니지만, 분명 적정노출을 잡는 데 실패하는 비율이 높아지기는 할 것이다. 자이스 이콘 콘테사 LKE 카메라는 셀레늄식 내장 노출계를 갖춘 모델이지만, 내가 산 물건은 노출계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처음엔 어느 정도 보정해서 쓸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게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은 빛을 세심하게 제어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외장 노출계를 따로 살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다. 스마트폰용 노출계 어플리케이션이 있으니까. 어떤 앱이 좋냐면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일단 내가 쓰는 것은 pocket light meter라는 앱(iOS용)이다. 대체로 기능이며 디자인은 대동소이한 것 같다. 휴대폰을 꺼내 노출을 재는 일이 번거롭긴 하지만, 그걸 컷마다 할 필요는 없다. 낮에 야외에서라면 전체적인 밝기가 변화무쌍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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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사진 36연차를 돌려보세요. /w 필름로그 업사이클 카메라
2000년대 초반에는 ‘필카’라는 말이 따로 없었다. ‘카메라’라고 하면 대개 ‘필름카메라’를 가리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는 특별히 ‘디지털카메라’나 ‘디카’라고 불렀다. ‘카메라 달린 휴대폰’이 보편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렇게 보급된 ‘폰카’의 성능이라는 것도 조악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방학 과제 때에도, 수학여행 때에도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썼다. 그땐 ‘셀카’라는 단어도 못 들어봤던 것 같다. 자기 얼굴 사진이 필요하면 근처 PC방에 가 ‘하두리’ 캠을 이용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 얘기다.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서 사진용 필름을 팔지 않기 시작하더니, 동네 사진관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남은 사진관도 필름 현상에서 손을 떼는 경우가 늘어났다. 아그파는 망했고, 코닥도 파산했다. 그러는 사이에 일회용 필름카메라도 그냥 ‘옛날이야기’ 속 물건이 됐다. 그러다 몇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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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아그파 비스타 200 세 롤.(/w pentax mx, canon eos-1)
‘필름 느낌’이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 필름으로 찍으면 필름 사진이고 디지털로 찍으면 디지털 사진인 건 알겠는데, ‘필름 느낌’은 뭐고 ‘디지털 느낌’은 또 뭐람. ‘감성’이라는 것도 정말 모르겠다. 어떤 것이 ‘감성적’인 건가? 그럼 ‘감성적’이지 않은 사진은 ‘이성적’인 건가? 이성적? 논리적? 모르겠다. 하여간, 최근에는 많은 사진을 필름으로 담고 있다. 특별히 필름 사진에 대한 애착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자동slr인 캐논 eos-1을 들이고 나서 필름 한 통 쓰는 게 정말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는 그냥 디지털로 찍듯이 막 찍어댈 수 있다. 한 컷 감고 한 컷 찍고, 초점은 또 수동으로 맞추고, 이러면서 괜히 또 신중한 척하고(사실은 알못인 주제에),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다. 날이 너무 더워져서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래도 한 번씩 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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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니 장마철도 ‘좋았던 시절’이 되고 만다(/w EOS-1)
징그럽게 덥다. 덥다. 뜨겁다. 푹푹 찐다. 숨이 막힌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훌쩍 넘어 고공행진 중이시다. 어제는 한 1만 보쯤을 걸었는데, 햇볕이 좀 덜 따가운 해 질 녘에 걸었는데도 그건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교훈을 얻고 오늘은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역시 에어컨은 인류 문명의 결정체라 하겠다. 문득 한 보름쯤 전과 요즘을 비교해 본다. 비에 젖지만 않으면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기억이라는 건 미화되기 마련이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완벽한 날씨라는 건 세상에 없다. 불어난 물에 잠긴 징검다리의 한쪽 팔 끝 즈음에 앉아서, 그 물이 몰고 오는 서늘한 바람과 이따금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즐기며 가만히 있었다. 사실 저 때 ‘즐기며’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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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마주친 것들(/w pentax mx+vista 200)
필름카메라를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것이, 의도하지 않았는데(중요) 계절의 흐름이 한 롤에 담기는 것이다. 저번에는 필름사진을 하도 안 찍다 보니 늦겨울에서 초봄을 거쳐 꽃이 지는 것까지 36컷짜리 135필름 한 롤에 담긴 적도 있었다. 정작 그럴듯한 사진은 몇 컷 건지지도 못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한 롤을 꽂으면 한 달 안에는 다 쓰려고 노력 중이다. 해보니까 한 달 안에는 다 쓸 수 있을 것 같다. 펜탁스 mx는 기계식 카메라라서 노출계 외에는 전기를 먹는 게 없는데, 그러다 보니 배터리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려서 노출계가 죽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냥 털레털레 산책 나왔는데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 그럼 뭐 별 수 있나, 뇌출계로 찍든 다른 노출계 역할을 할 만한 걸 찾든 해야지.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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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필름 카메라에 필름 끼우기: 펜탁스 mx를 중심으로
오래전에 썼던 내용을 조금 고쳐서 다시 올립니다. -라고 쓰고 ‘조금’만 고치려고 했는데, 다시 찬찬히 보니까 도저히 못 봐주겠는 흑역사 수준의 글이었어서 결국 다 갈아엎고 다시 썼습니다. 사실 원래는 제가 안 잊어버리려고 써놨던 건데요. 최근에 티스토리 블로그 방문자 수가 갑자기 늘었길래(그래 봤자 수십 명 수준이지만) 뭘까 하고 유입 키워드를 봤더니, ‘필름 끼우기’를 검색한 이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복고 열풍 어쩌고’로 얘기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지금 시대의 ‘필름 사진’이라는 건 또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디지털 원주민’들에게는 이게 복고고 자시고도 아니라는 그런 해석이었는데요. 저는 그… 필름카메라가 예뻐서 좋아하는데요… 예 역시 카메라는 예쁜 게 최고입니다. 하여간 필름 사진이 다시 흥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재미있고 가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