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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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오륙년 묵은 기억, 전주 우아주공1차아파트.
도시는 언제나 일일신우일신.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 내가 딛고 선 이 자리에는 벌써 수천 년, 수만 년, 그 이상의 시간이 겹쳐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변하는 건 강산이 아니다. 풍경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많고 활기가 있는 도시일수록 그런 변화는 더욱 빠르고, 더욱 힘차다. 이제는 흔한 단어가 되어버린 ‘젠트리피케이션’을 생각한다. 딱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도 아닌, 그냥 ‘현상’으로서의 그것을. 땅은 한정적이고, 세월은 흐르며, 사람도 사람의 생활 양태도 변한다. 건축물은 낡으면 위험해지고, 도로나 철도는 좁고 굽은 채로 두면 제 기능을 못 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재건축이라는 것도 결국 그렇다. 오래된 아파트가 헐리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이 지어지는 것은, 그 도시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낡은 채로 세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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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물이 많이 불었다.
바깥은 번쩍번쩍하고, 쏴아 하고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또 이따금 꽈광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쨌든 잘 자고 있었는데, 새벽 네 시쯤이었을 것이다. 삐이익 하는 익숙한 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렸다. 재난알림문자였다. 폭우로 큰 피해가 우려되니 주의하라던가 뭐라던가. 비몽사몽간이라 자세히 읽지는 못하고 알림을 끄고 다시 누웠다. 그 뒤로 두 번인가 더 알림이 왔다. 아침에는 분명히 깨 있었는데, 누워서 꾸물대다가 다시 잠들었다.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들어가는 요상한 꿈속을 헤매고 깨니 어쩐지 굉장히 지치는 느낌이었다. 덥지도 않은 날씨에 땀이 좀 났던 것 같다. 요즘은 꿈이 참 선명하다. 꿈이 선명하다 보면, 일하는 꿈을 꾸면 실제로 일을 한 것처럼, 뛰는 꿈을 꾸면 실제로 뛴 것처럼 피곤하다. 의학적으로 실제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기분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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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산책 중에 고양이 만남.
그러니까 이 사진을 찍던 날이었다. 지나간 태풍 ‘솔릭’이 발자국처럼 남겨놓은 구름들이 저녁 햇빛을 받아 뻘겋게 빛나던, 한여름의 열은 살짝 식고 그 틈으로 초가을의 것으로 봐도 무방할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산책을 하면 우리는 고양이를 만날 수가 있다. 바로 이 말입니다. 해는 곧 지고,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가지고 있던 카메라의 감도를 25600까지 올렸다. 노이즈 감소 기능이 작동하면서 마치 아지랑이처럼 밀린 화면 속에는 그러나 고양이의 안광이 선명했다.(사실 옆에서 휴대폰 플래시를 비춘 것이다)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 이 작은 고양이는 간식 한 봉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귀엽군요… E-m1의 고감도 성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다. 산책을 생활화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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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바닷바람은 선선하네(/w dji spark)
즉, 그런 거다. 아아- 덧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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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아그파 비스타 200 세 롤.(/w pentax mx, canon eos-1)
‘필름 느낌’이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 필름으로 찍으면 필름 사진이고 디지털로 찍으면 디지털 사진인 건 알겠는데, ‘필름 느낌’은 뭐고 ‘디지털 느낌’은 또 뭐람. ‘감성’이라는 것도 정말 모르겠다. 어떤 것이 ‘감성적’인 건가? 그럼 ‘감성적’이지 않은 사진은 ‘이성적’인 건가? 이성적? 논리적? 모르겠다. 하여간, 최근에는 많은 사진을 필름으로 담고 있다. 특별히 필름 사진에 대한 애착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자동slr인 캐논 eos-1을 들이고 나서 필름 한 통 쓰는 게 정말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는 그냥 디지털로 찍듯이 막 찍어댈 수 있다. 한 컷 감고 한 컷 찍고, 초점은 또 수동으로 맞추고, 이러면서 괜히 또 신중한 척하고(사실은 알못인 주제에),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다. 날이 너무 더워져서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래도 한 번씩 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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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니 장마철도 ‘좋았던 시절’이 되고 만다(/w EOS-1)
징그럽게 덥다. 덥다. 뜨겁다. 푹푹 찐다. 숨이 막힌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훌쩍 넘어 고공행진 중이시다. 어제는 한 1만 보쯤을 걸었는데, 햇볕이 좀 덜 따가운 해 질 녘에 걸었는데도 그건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교훈을 얻고 오늘은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역시 에어컨은 인류 문명의 결정체라 하겠다. 문득 한 보름쯤 전과 요즘을 비교해 본다. 비에 젖지만 않으면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기억이라는 건 미화되기 마련이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완벽한 날씨라는 건 세상에 없다. 불어난 물에 잠긴 징검다리의 한쪽 팔 끝 즈음에 앉아서, 그 물이 몰고 오는 서늘한 바람과 이따금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즐기며 가만히 있었다. 사실 저 때 ‘즐기며’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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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마주친 것들(/w pentax mx+vista 200)
필름카메라를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것이, 의도하지 않았는데(중요) 계절의 흐름이 한 롤에 담기는 것이다. 저번에는 필름사진을 하도 안 찍다 보니 늦겨울에서 초봄을 거쳐 꽃이 지는 것까지 36컷짜리 135필름 한 롤에 담긴 적도 있었다. 정작 그럴듯한 사진은 몇 컷 건지지도 못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한 롤을 꽂으면 한 달 안에는 다 쓰려고 노력 중이다. 해보니까 한 달 안에는 다 쓸 수 있을 것 같다. 펜탁스 mx는 기계식 카메라라서 노출계 외에는 전기를 먹는 게 없는데, 그러다 보니 배터리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려서 노출계가 죽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냥 털레털레 산책 나왔는데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 그럼 뭐 별 수 있나, 뇌출계로 찍든 다른 노출계 역할을 할 만한 걸 찾든 해야지.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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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단오 무렵의 덕진공원.
공기가 이상하게 탁했는데, 그래도 오랫동안 드론을 안 날렸으니까 오늘 한 번 날려보자 하고 덕진공원에 갔다. 그러고 보니 단오가 다가오는데, 단오 행사한다고 부스도 설치하고 뭐 이것저것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옛날에는(그러니까 한 오십년 쯤 전에는) 덕진연못 물가에 창포가 많이 자라서 연못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도 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지금은 실수로라도 저 물에 내 몸이 닿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다. 연잎은 많이 올라왔는데, 연꽃이 피려면 아직 한참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저 연화교는 철거한다 철거한다 하면서 아직도 그대로다. 연꽃 시즌이 끝나면 철거하려나? 어쩌면 이번에도 철거 안 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2062년, 삐걱거리는 연화교를 걸으며 저 멀리 긴 꼬리 달고 지나가는 핼리 혜성을 보게 되는데…… 약간 오버노출로 찍고 끌어내리는 쪽이 색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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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6. 고양이를 많이 만난 날
오늘은 이상하게 고양이를 많이 만났다. 이상하게? 알고 보면 원래 다 그 자리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운이 없어서 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늘은 공휴일이어서 유동인구가 적으니 고양이들이 평소보다 덜 숨어있었던 것일지도. 이 아이는 전에 밥을 줬던 그 고등어 아이다. 털이 꼬질꼬질하고 좀 마른 편이다. 여전히 경계심이 강했지만, 그래도 저번에 밥을 줬었던 걸 어렴풋이 기억은 하는지 지난번 처음 봤을 때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를 허용했다. 오늘은 아쉽게도 밥을 주지 못했다. 다음에 또 보면 츄르를 줘야겠다. 점심을 먹으러 나섰는데, 이번에는 노란 고양이가 주차된 자동차 아래 그늘에서 쉬고 있는 것을 봤다. 볕이 뜨거우니 차 아래 그늘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다. 저쪽을 계속 바라보길래 뭐가 있나 했는데, 잠시 뒤에 까치로 보이는(정확히는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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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서 꺼내보는 11년 전 도라산역.
평양행 새마을 기차표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발권됐단다. 진짜로 평양까지 가는 표는 아니고, 늦봄 문익환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특별히 준비된 것이라고. 실제로는 경의선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북쪽 역인 도라산역까지 가서 문화제를 보고 돌아오는 행사였다고 한다. 푯값은 2만7000원. 비록 이벤트성이긴 해도, 언젠가는 ‘평양행 새마을’, ‘평양행 KTX’ 같은 것도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11년 전에도 비슷한 기대가 있었는데, 경의선이랑 동해북부선 철도 연결사업이 진행되면서 남북 서로의 열차가 휴전선을 넘은 일이 있었다. 그게 2007년 5월 17일이었는데, 남쪽 열차는 개성까지, 북쪽 열차는 제진까지 운행했다. 일회성 행사였지만 앞으로 언젠가 이것이 정식 개통으로 이어지고 마침 또 다가오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열차로 가니 어쩌니 하는 얘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런 만남이 어디부터…